사역 공간/성경공부 자료실

심슨의 성결론-이한규목사 번역에서 발췌

힐링&바이블센터 2009. 1. 24. 13:52

심슨의 성결론(1) 성결이라는 천상의 아름다움"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3-24)I. 완전한 성결(Wholly Sanctified)'그리스도인의 삶과 성결'이라는 주제가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 현상은 우리 시대에 보여지는 '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여러 가지 징조 중의 하나입니다.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주님의 재림'이라는 주제에 관한 관심이 커질 때에는 '성결'이라는 주제도 관심이 커지는 점을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이 두 가지 주제는 교회와 교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바람개비의 방향은 바람의 힘이 있을 때 나타납니다. 바람이 바람개비를 향해 강하게 불면 불수록, 그 바람개비는 보다 정확하게 일정한 방향을 지향합니다. 마찬가지로 '재림'과 '성결'에 관한 관심의 바람이 거세다는 것은 성도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성결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과 재림의 시기가 점차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잘 나타내줍니다. 이 두 가지 진리, 즉 거룩한 삶과 그리스도의 재림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24절에 함께 묶여져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전자(거룩한 삶)는 후자(그리스도의 재림)를 준비하는 것이며, 후자는 전자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때,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의 생각과 영혼을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면 진리에 한층 더 다가서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의 놀라우신 은혜와 '거룩이라는 천상의 아름다움' 앞에서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결의 창시자(The Author of Sanctification)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나오는 '평강의 하나님(God of peace)'이라는 이름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화해의 자리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평강의 하나님'으로 알지 않으면 성결을 추구한다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암시합니다. 모든 의심과 두려움을 추방하고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로 그 평강의 하나님(the very God of peace)'으로 철저히 인식하게 만드는 칭의는 성결의 경험이 실제적이고 지속적인 경험이 되도록 하는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점이 여러분들이 추구하는 보다 차원 높은 성결의 경험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아닐까요?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시 11:3) 여러분들의 영적 삶의 하부구조에 느슨한 돌과 심각한 문제점이 있어, 그리스도의 말씀과 완성된 구속 사역에 대한 견고한 믿음의 기초를 다시 세우는 작업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지금 즉시 그 작업을 해 보십시오. 느낌에 의존하지 말고, 질문도 하지 말고, 완전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단순하게 받아들여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다(요 3:36)"고 약속하셨고,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단순하게 받아들인 후 만세반석(the Rock of Ages) 위에 굳게 서서 거룩한 몸의 성전을 건축해 보십시오. '바로 그 평강의 하나님'이란 표현은 더 나아가서, 성결이 '보다 심오한 평화(a deeper peace)'로 가는 길이고, 심지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빌 4:7)' 바로 그 자체라는 사실을 시사해 줍니다. 칭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과의 평화(peace with God)'를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성결은 '하나님의 평화 그 자체(the peace of God)'입니다. 우리들이 가진 모든 불안의 원인은 죄입니다.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사 57:20-21) 그러나 그 반대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 119:165) 이러한 원리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불순종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탄의 소리를 발하시는 것입니다.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물결 같았을 것이며."(사 48:18)성결은 사람의 영혼을 '영혼 자신의 존재 법칙과 하나님의 법칙과의 조화관계'로 이끕니다. 그래서 그 사이에는 당연히 평강이 존재하게 되는데, 그 밖의 다른 방법으로는 그 평강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결은 사람들의 심령에 평강의 하나님 그분 자신의 임재하심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때의 참된 평강이란 그분 자신의 영원하고, 심오하고, 신적인 고요함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24절이 의미하는 보다 심오한 의미는, 성결은 하나님 그분 자신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23절 전반부는 "평강의 하나님 그분 자신이 너희를 거룩하게 하신다"라고 문자적으로 해석될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성결의 창설자로서의 그분 자신의 인격성을 직접적이고 강조하며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결은 인간의 작품도 아니고 수단도 아니며, 우리 자신의 투쟁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자신의 특권적 작품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은사요, 성령의 열매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요, 천국에 들어갈 모든 사람들에게 준비된 유업이요, 믿음의 위대한 목표이지만, 인간 노력의 산물은 아닙니다. 그것은 신적인 거룩함이지만, 인간의 자기 증진 혹은 완벽주의는 아닙니다. 그것은 무한하고 영원하고 거룩한 분의 생명력과 순수성이 인간이라는 존재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그것을 통해 그분 자신의 온전함이 우리에게 전달되며 우리 안에 그분 자신의 뜻이 드러나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이루는 이와 같은 놀라운 길은 얼마나 쉽고, 얼마나 자발적이며, 얼마나 즐거운 길입니까! 틀림없이 그 길은 인간의 헛되고 쓸데없는 고행이라는 저차원의 길이 아닌 '고속도로'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하나님께서 드높인 위대한 '철로 길'로, 사람들이 그분의 높은 길로 들어섰을 때 그분 자신의 전능하신 인도에 의해, 낮은 길을 따라가며 신음하고 투쟁하는 군중들의 머리 위를 휩쓸고 지나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 길은 우리들의 땀흘리는 노력 없이 그분의 높은 궁정으로 우리를 옮겨 주는 '하나님의 위대한 승강기'와 같습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꾸불꾸불한 계단을 통해 힘써 올라가야 하고 길을 가면서 힘이 다 빠져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밧줄에 묶여있는 배를 선원들이 잡아당기는 것과 같은 어떤 특별한 노력이 없이도 물위를 떠다닐 수 있도록 그 배를 띄워 올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바다물결'과도 같습니다. 배가 모래톱에 박혀 있으면 선원들이 비효율적이고 무의미한 노력을 계속하고, 엔진을 무리하게 작동해도 하늘의 역사에 의해 그 배가 들어 올려질 때까지 그 배는 1인치도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태양빛의 작용을 통해서 거대한 빙산을 들어올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인력법칙'과도 같습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이 노력해도 그 빙산을 1인치라도 들어올릴 수 없지만, 따뜻한 태양빛 아래에 그 빙산은 녹아 없어져 공중으로 올라가 수증기가 뭉친 구름으로 변하게 되고, 결국 그 차고 무거운 빙산 덩어리가 푸른 하늘에서 영광의 뭉게구름으로 떠다니는 것과 같은 광경을 만들어 냅니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쉽습니까! 얼마나 능력 있습니까! 얼마나 간단합니까! 얼마나 신적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그 '신적인 거룩의 길(divine way of holiness)'을 경험하셨습니까? 만약 경험하셨다면, 여러분들이 방금 전에 읽었던 그 진리의 말씀들이 귓가에 메아리치는 순간, 여러분들의 마음은 얼마나 감사로 부풀어올라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경험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들께서는 그 길을 추구하시고, 그 평강의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달라는 성경 본문(살전 5:23)에 나오는 그 기도에 지금 바로 동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심슨의 성결론(2) 죄악으로부터의 분리

 

  ‘성결하게 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그 단어가 사용되는 성경 본문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그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세 가지 특징적이고 뚜렷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째, ‘성결하게 하다’라는 것은 ‘분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개념은 특별한 임직식과 관련되어 그 개념이 사용됩니다.

 

  분리라는 개념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 기사에서 처음으로 표현되는데, 그 기사에서 성결에 대한 본질적인 사상을 그려낼 수 있습니다. 혼돈으로부터 질서, 법칙, 그리고 빛을 만들어내기 위한 하나님의 첫 번째 사역은 ‘분리하는 것’이었고, 어둠과 빛, 그리고 땅과 하늘이라는 두 세계 사이에 궁창 혹은 간격을 놓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둠을 소멸시키지 않으셨고 다만 그 어둠을 빛으로부터 분리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물로부터 땅을 분리시켰고, 하늘의 수증기로부터 바닷물을 분리시켰습니다.

 

  그 후 즉시 우리는 하나님이 영적인 나라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분리시키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세속적인 혈통과 셋의 가계를 분리시켰습니다. 또한 노아와 그 가족들을 세속적인 세계로부터 분리시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우상을 숭배하는 가계로부터 분리시켰고, 이tm라엘을 애굽과 주변 나라로부터 분리시켰습니다.

 

  교회라는 단어의 의미는 ‘부름 받아 나왔다’ 혹은 ‘분리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와 똑같은 부르심이 지금도 각 개인에게 여전히 들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6:17-7:1)

       

  성결은 악으로부터 자발적으로 분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악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악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자신과 악 사이에 건너갈 수 없는 간격을 놓음으로써 악을 떼어놓고 멀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죄’ 뿐만 아니라 ‘삶의 원리가 되어버린 죄’로부터도 자신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거룩하지 못한 상태를 향상시키고 점진적으로 개선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면서 옛 삶을 분리시키십시오. 죽음에 의해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처럼 우리의 죄악 된 자아로부터 우리의 거룩하지 못한 부분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옛 사람이 아닌 것처럼, 그리고 옛날의 심령은 더 이상 참된 자신의 심령이 아닌 것처럼 자신을 죄에 대해서 정말로 죽은 자처럼 여겨야 합니다(참조, 롬 6:11).

 

  내적인 것이든지 외적인 것이든지 상관없이 모든 죄악 된 모습, 즉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모습 암시, 모든 유혹, 그리고 모든 충동을 거부하십시오. “안 돼!”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전 존재를 가지고 죄악을 부정하고 죄악에 저항하십시오. 죄악을 소멸시킬 수는 없지만 우리 자신의 힘을 다해서 그것에 저항해야 하고, 단호한 의지적 행동으로 우리 자신을 죄악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하며, 그 죄악을 하나님께 넘겨드리고, 그것을 철저히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죄악을 다루고 없애는 전권을 맡기십시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항상 그분의 전능하신 능력을 가지고 우리의 헌신된 마음을 보증해주실 것이며, 우리와 우리가 포기하는 죄 사이에 밑바닥이 보이지 않도록 깊이 파진 협곡과 새 예루살렘성의 기초석과 같은 높은 벽을 놓으실 것입니다.

심슨의 성결론(2) 성결의 의미(1) 거룩한 분리'성결하게 하다'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그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성경 본문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단어가 구약 성경에서 세 가지 특징적이고 뚜렷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성결하게 하다'라는 것은 '분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개념은 특별한 임직식과 관련되어 그 개념의 사용을 철저히 추적해 볼 수 있습니다. 분리라는 개념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 기사에서 처음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 기사에서 우리는 성결에 대한 본질적인 사상을 그려낼 수 있습니다. 혼돈으로부터 질서, 법칙, 그리고 빛을 만들어내기 위한 하나님의 첫 번째 사역은 '분리하는 것'이었고, 어둠과 빛, 그리고 땅과 하늘이라는 두 세계 사이에 궁창 혹은 간격을 놓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둠을 소멸시키지 않으셨고 다만 그 어둠을 빛으로부터 분리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물로부터 땅을 분리시켰고, 하늘의 수증기로부터 바닷물을 분리시켰습니다. 그후 즉시 우리는 그분께서 영적인 나라에서 그분의 백성을 분리시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분의 가인의 세속적인 혈통과 셋의 가계를 분리시켰습니다. 그분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세속적인 세계로부터 분리시켰습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우상을 숭배하는 가계로부터 분리시켰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을 애굽과 주변 나라로부터 분리시켰습니다. 교회라는 단어의 의미는 '부름받아 나왔다' 혹은 '분리되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와 똑같은 부르심이 지금도 각 개인에게 여전히 들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6:17-7:1)그러므로 성결은 우리가 악으로부터 자발적으로 분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악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악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시켜 우리와 악 사이에 건너갈 수 없는 간격을 놓음으로써 악을 떼어놓고 멀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의 죄' 뿐만 아니라 '삶의 원리가 되어버린 죄'로부터도 우리 자신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거룩하지 못한 상태를 향상시키고 점진적으로 개선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면서 옛 삶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죽음에 의해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처럼 우리의 죄악된 자아로부터 우리의 거룩하지 못한 부분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그리고 옛날의 심령은 더 이상 참된 자신의 심령이 아닌 것처럼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해서 정말로 죽은 자처럼 여겨야 할 것입니다(참조, 롬 6:11).우리는 내적인 것이든지 외적인 것이든지 상관없이 모든 죄악된 모습, 즉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모습 암시, 모든 유혹, 그리고 모든 충동을 거부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안돼!"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전 존재를 가지고 죄악을 부정하고 죄악에 저항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악을 소멸시킬 수는 없지만 우리 자신의 힘을 다해서 그것에 저항해야 하고, 단호한 의지적 행동으로 우리 자신을 죄악으로부터 분리시키야 하며, 그 죄악을 하나님께 넘겨드리고, 그것을 철저히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죄악을 다루고 없애는 전권을 맡기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분의 전능하신 능력을 가지고 우리의 헌신된 마음을 보증해 주실 것이며, 우리와 우리가 포기하는 죄 사이에 밑바닥이 보이지 않도록 깊이 파진 협곡과 새 예루살렘성의 기초석과 같은 높은 벽을 놓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분리시키면, 하나님께서 그 분리를 선하게 만드십니다. 성결에 있어서 첫 번째 결정적 단계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명백히 드러나서 빛으로 조명되어진 모든 모양의 죄를 포기하겠다는 의지적 행동입니다. 우리는 모양을 드러낸 죄악 뿐만 아니라 전체 죄악 자체 및 각 심령의 분리시키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표면에 떠오른 죄악된 본성까지 거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세상과 옛 구습에 따른 세속적인 모습, 그리고 죄악의 권세가 미치는 영역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속한 존재가 아니었던 것처럼 똑깥이 우리도 세상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단순히 죄악된 것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 죽고 초자연적이고 신적인 삶으로 부활하기 위해서 자연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도 멀리해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을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성령께서는 우리를 보다 심오한 분리로 이끌어 내셔서, '죄악된 것(the evil)'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땅에 속한 것(the earthly)'으로부터도 분리하게 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모든 면에서 초자연적인 삶으로 드높이시며,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는(고전 15:54)' 그러한 위대한 변형을 이 땅에서도 이루어 가도록 우리를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첫 번째 사람은 땅에서 비롯되어 타락하기 전에도 그는 땅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첫 번째 사람은 살아있는 영으로 만들어지고 우리를 그분 자신의 형상으로 드높인 두 번째 사람으로 대치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면 이러한 원리의 실제적인 힘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의 옛 죄악된 자아와 여러분 자신의 타락한 속성에 미치는 모든 죄악을 보여주실 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완전한 의지적 동의 아래 단호하게 그 죄악을 그분에게 넘겨드려야 합니다. 그때 그분은 여러분들로부터 죄악을 분리시킬 것이고, 죄악의 권세로부터 여러분들을 완전히 건져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죄악이 더 이상 여러분들을 통제하지 못하게 하고 어떤 감각에서도 여러분들에게 속하지 못하도록 그분의 손 안에서 죄악을 다루어야 합니다. 그분께서 더 나아가서 여러분들에게 죄악된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을지라도 그분의 삶과 의지에 부합되지 않는 것들을 보여주실 때, 여러분들은 자신을 분리시켜서 그러한 것들을 그분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그분 자신과 상관없는 모든 것들을 소멸하고, 우리의 전 존재를 새로운 부활의 삶 가운데로 끌어올리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신들이 죄악과의 사투 및 자기와의 억누를 수 없는 갈등으로부터 건짐 받았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편에서 해야 할 일은 여러분 자신의 손으로 '아각'을 사형에 처하라고 단순히 넘겨주고(삼상 15장), 주께서 그 '아각'을 철저히 죽이고 영원히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 없애는 일을 하실 때 그 일에 기쁘게 동의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기 위해 이와 같이 여러분들 자신을 분리시켰습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기쁘게 동의하며 그분의 권위를 인정할 때까지는 그분의 손으로 죄악을 처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무엘하 20장에 나오는 요압의 이야기와 같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성 앞에 진을 치고 여러분들에게 '세바'가 죽든지 아니면 성이 멸망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그분의 사자를 보낼 때, 여러분들은 자신의 손으로 세바를 넘겨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들께서는 그렇게 하셨습니까? 아니면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즐겁게 동의하며 '은혜로운 속죄제물(the blessed Sin-Offering, 구약의 죄를 전가하는 의식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형상화한 용어-역자 주)'의 머리 위에 여러분들의 손을 대고, 여러분들의 죄악과 잘 알려진 가장 소중한 우상들을 그분에게 넘겨드리지 않겠습니까? 죄의 전가를 통한 그분의 속죄 사역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심슨의 성결론(3) 성결의 의미(2) 주님께 헌신하는 것둘째, '성결하게 하다'라는 것은 '헌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단어는 '분리해 떨어지는 것(seperate from)'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분리해 향하는 것(seperate to)'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 단어의 근본적인 개념은 '다른 존재의 소유가 되도록 분리해 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 소유권을 인정하며, 그분이 우리를 그분의 특별한 존재로 소유하고, 그분의 목적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고, 우리 안에서 그분의 거룩하고 온전한 의지를 실행해 나갈 수 있도록 그분에게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값으로 산 존재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것인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고전 6:19-20).하나님께서 우리를 값으로 사셨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무한히 겸손하시기에 우리의 자아포기를 강요하지 않으시고 오직 자발적인 헌신만을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그분의 강권하는 사랑에 매인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우리는 '그분에게 속한 것'과 '쓸모 없는 우리를 들어올리시기 위해서 그분이 허리를 굽히시는 것'과 '매 순간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책임지고 지켜주시는 것'을 최대의 특권으로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결'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가장 적절히 나타낸 것입니다. 성결은 강권하시는 사랑에 의해 주님에게 속한 자가 되기 위한 자발적인 포기 혹은 자기 헌신입니다. 물론 성결은 믿음으로부터 솟아나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해도 우리는 안전한 존재라는 절대적인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즉 우리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또한 심판자의 손에 넘겨지는 것도 아니며, 다만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것이고 무한한 기업으로 발을 내딛는 것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 즉 그분의 무한하신 지혜와 능력과 사랑이 우리 안에서 성취하시기를 기뻐하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겠다고 보증하시는 분에게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특권입니다. 그것은 진흙이 주인이 사용하기에 적절한 영광스런 그릇으로 만들어지도록 도공의 손에 자신을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불쌍한 거리의 유랑아가 왕자의 자녀가 되기를 동의하고 교육을 받고 필요한 것을 제공받음으로 자신의 보호자의 모든 유산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와 같은 '맡김(surrender)'을 계속해서 주저하고, 그분의 선하고 온전하신 뜻을 버리고 다른 어떤 조건을 통해 성결을 이루어가려는 시도를 계속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 되겠습니까!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을 완전히 맡기셨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주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그 축복된 사실에 관해 방금 언급한 우리의 모든 말에 여러분들의 전 존재가 '아멘'이라고 기쁘게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이 순간 맡기시고 그분의 사랑의 발아래 온전한 번제물로서 납작 엎드려 부르짖으십시오. 불쌍한 나의 심령 받으사 당신만을 향하게 하시어,당신을 제외한 모든 것에는 영원히 닫히게 하소서.나의 가슴에 당신의 인을 치시어 영원히 거기에서당신이 서약한 사랑의 옷을 입을 수 있게 하소서.

 

심슨의 성결론(4) 영이란 무엇입니까?(What Is the Spirit?)한 마디로 영은 '인간 안에 있는 신적 요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마 보다 정확하게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요소'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영은 인간의 지적인, 정신적인, 미적인, 그리고 감각적인 부분이 아니고, 하늘의 신적인 존재를 인식하고 그 존재와 대화할 수 있는 영적이며 보다 차원 높은 속성입니다. 1. 영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아는 요소입니다. 영은 직접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신적인 임재를 의식할 수 있고, 그분과 교제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은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영광을 보고, 그분의 감동적인 손길과 확실한 뜻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성품과 특성을 이해하고 경배하게 하며, 영으로 그분에게 말할 수 있으며, 기도의 언어와 찬양과 거룩한 친교를 통해 그분과 대화할 수 있게 하는 요소입니다. 그것은 또한 악한 영의 세계도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목자의 음성은 물론 적의 손길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2. 영은 의와 불의의 차이를 인식하는 요소입니다. 영은 의를 사랑하고, 의로운 일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분별하고, 선택합니다. 그것은 인간 속성의 도덕적 요소입니다. 그것은 양심이 말하고 통치하는 영역입니다. 그것은 의로움과 순결함과 거룩함의 좌소이며, 하나님을 닮게 하고, 그분의 형상을 따라 의로움과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된 새로운 인간을 만드는 요소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성에 그러한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고, 그것이 단순한 이해력의 영역이나 심령의 느낌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3. 영은 우리의 행동과 순종에의 전인적 요청을 선택하고, 목표하고, 결심하고, 그래서 실제적으로 행동을 결정하는 요소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영은 의지의 영역이고, 인간 속성 중에서 가장 강력한 동기이고, 하나님께서 인간, 특히 그분의 자녀에게 나누어주신 신적인 특권이고, 성격과 운명의 전 항목을 관장하고 결정하는 핵심적인 키입니다. 영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그 영이 온전히 성결하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필수적인 일입니까! 그 영이 성결하게 되었느냐 혹은 아니냐에 따라서, 삶은 순종의 삶이 되든지 아니면 불순종의 삶이 될 것입니다. 의지가 바르고, 그 바른 선택이 흔들리지 않고, 잘못된 것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심령을 진실되고 순수한 심령으로 인정하실 것입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 8:12)4. 영은 신뢰심을 가지는 요소입니다. 확신은 영의 특성 및 실체 중의 하나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얼굴을 의심 없이 바라보게 하고, 두려움 없이 그분의 품에 안기게 하고, 자녀의 단순성을 가지고 그분의 손에 완전히 맡기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는 특성입니다. 5. 영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요소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간의 감정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사랑은 낮은 차원의 혼적인 속성에 속한 것이고, 죄와 허물로 자신의 영이 하나님 앞에서 죽은 상태가 된 사람 안에서 넘쳐나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신적인 사랑은 성령의 직접적인 선물이고, 온전한 거룩함과 순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산물이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인간의 심령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흐르게 됩니다. 신적인 사랑이 임하는 가장 적절한 곳은 인간의 심령입니다. 6. 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요소입니다. 영은 그분의 의지를 만들어내고, 그분이 의도하는 최상의 목표를 이루게 하고, 스스로를 감추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그러한 최상의 목표에 대한 개념은 인간의 마음에는 생소한 것이기 때문에, 신적 형상으로 거듭난 영에 의해서만 그 최상의 목표가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7. 영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요소입니다. 영은 그분의 임재 및 그분과의 교제를 사모하고, 영의 양육, 영의 수혜, 영의 만족, 영의 상속 등 영의 유익에 필요한 모든 것을 철저히 하나님 그분 안에서 발견하게 합니다. 인간의 속성 중에서 이 놀라운 요소는, 영적 삶보다 엉성한 형태의 육신적 삶에서 발견되는 모든 지각력과 감수성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육신적 삶의 감각기관처럼 실제적이고 뚜렷한 영적 감각기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영적 감각기관에 대한 기록을 성경에서 분명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영적 청각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11) "그러나 너희 눈을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 13:16)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영적 시각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너희 눈은 그 영광 중의 왕을 보며 광활한 땅을 목도하겠고."(사 33:17)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고후 3: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막 8: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행 26:18)영적 촉각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 3:12) "다만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마 14:36)영적 미각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요 6:57)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 34: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영적 후각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이사야 11장 2-3절 말씀은 영적 후각을 언급하고 있는 말씀이 분명합니다.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이 구절에서 '즐거움을 삼는다'라는 구절은 원어의 의미로 '향기를 맡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은 실제적인 본체입니다. 죽음 후에 육체로부터 분리될 때에도, 영은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의식을 가지게 될 것이며, 아마 느낌, 행동, 즐거움에 있어서 육신으로 있을 때보다 더욱 강한 지각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성의 최상의 선물이고, 하나님의 집의 가장 높은 좌소이고,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가장 위대한 인간의 속성이었다가, 죄와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본성을 잃어버리고, 퇴화되고, 훼손되고, 묻혀져 버린 영에 관해서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이 영이 어떻게 성결하게 될 수 있는가는 다음 시간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심슨의 성결론(5) 영의 성결의 의미(1) 분리된 영영의 성결이란 무엇입니까?(What Is It for the Spirit to Be Sanctified?) 영이 생명력으로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입니다. 영은 원래 죽은 상태였습니다. 중생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난 생명처럼 중생을 통해 영은 생기가 넘치게 되었는데, 그 생기는 첫 창조 때에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입술로부터 생명력이 그 영에 불어넣어진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중생하지 못한 혼은 영적으로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혼의 기능은 살아있고, 혼의 동물적 삶은 활동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그것은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입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을 때(롬 5:12), 인간은 육체적 죽음 뿐만 아니라 영적 죽음에서 탈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은혜로운 선물 독생자 안에서 나타내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자신의 희생을 통해 우리를 사망의 사슬에서 구해 주시고, 우리가 생명의 법을 따라 살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결하게 된 영'이란 무슨 말입니까?첫째, 성결하게 된 영이란 '분리된 영'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른 봄 검고 차가운 땅을 살펴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손으로 그 땅을 파헤치게 되면, 여러분들의 손가락은 얼얼해지고 상처를 입게 될 것입니다. 아마 그 땅에는 퇴비와 고랑 사이를 기어다니는 지렁이들이 섞여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제까지 그 검은 토양으로부터 자라 나오는 조그만 식물 혹은 꽃을 본 적은 없습니까? 그 조그만 식물의 뿌리는 흩날리는 눈발처럼 희고, 잎은 앙증맞게 생기고, 꽃잎은 보조개 지어진 어린아이의 뺨처럼 생겼는데, 그 식물의 속성 및 순수함으로 그 식물 주위를 둘러싼 더러운 토양으로부터 분리되었고, 그 더러운 토양이 그 식물을 결코 더럽히지 못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은 없습니까?그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영은 그 영 자신의 신적 속성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의 죄악된 심령으로부터 분리된 상태로 존재합니다. 성결의 제일 첫 번째 단계는 이 분리를 인식하고, 우리 자신을 이전과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며, 죽음에서 부활한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향해 살아 있는 자요, 신적 속성의 동참자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에게 속하지 않은 모든 것, 즉 죄를 비롯해서 세상, 자기, 우리의 옛 본성을 따르는 삶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모든 우리의 영적 본능, 영적 감각, 영적 지각들은 죄악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며, 심지어는 유혹의 손길과 접근조차 직관적으로 피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내적 귀를 가지고 이상한 소리를 듣는 것을 거절해야 하고, 영적 눈을 가지고 환상적이고 유혹적인 장면을 보는 것을 거절해야 하며, 영적 촉각을 가지고 깨끗하지 않은 것을 만지는 것과 금지된 것을 맛보는 것을 거절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민한 영적 후각을 가지고, 전체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죄악된 것들이 드러나는 분위기일 때, 그 분위기를 거절해야 하며, 그 죄악된 것들을 버리고, 그 죄악으로부터 분리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또한 혼(the soul)과 죄(the sin) 사이에 그분이 임재하시는 큰 간격을 놓아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결하게 된 영은 또한 다른 사람들의 영, 특히 하나님의 의지와 상관없이 행동하려는 인간적인 영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언급한 영의 모든 측면이 다 분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차원 높은 의식은 하나님 이외의 다른 모든 신들로부터 분리되어야 합니다. 의를 아는 도덕적 감각은 모든 불의로부터 분리되어야 합니다. 의지는 하나님의 의지를 거슬리는 다른 어떤 선택이나 성향을 취하지 않도록 분리되어야 합니다. 신뢰의 능력은 모든 불신앙과 불신으로부터 자발적으로 분리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능력은 금지된 사랑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야 합니다. 목표와 동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며, 영의 기쁨의 원천은 정화되어야 하며, 영은 하나님의 기쁨과 조화를 모든 세상적인 기쁨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영은 하나님의 의지 및 거룩한 삶에서 여러분들을 훼손시키고 혼란하게 만드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와 같이 분리되었고, 정화되었고, 벗어났습니까?

 

심슨의 성결론(6) 영의 성결의 의미(2) 헌신된 영둘째, 성결하게 된 영이란 '헌신된 영'을 말합니다. 헌신된 영의 인식 능력은 하나님을 알도록 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놀라운 지식에 대해서 상세히 알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헌신된 영의 가장 심오한 연구와 묵상의 대상이며,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영광'은 헌신된 영이 가장 기뻐하는 묵상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것,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는 것은 헌신된 영이 추구하는 가장 고상한 목적입니다. 헌신된 영은 하나님을 자신의 일부요, 자신의 전능하신 주로 신중하게 선택하며, 자신을 하나님의 전적인 소유와 하나님의 온전한 의지 아래 두기를 기뻐합니다. 헌신된 영은 '단순한 심령'이 가진 요소이며, 하나님이 선택하는 최상의 것으로서, 성경에서 말하는 온전한 심령이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결하게 된 영 안에 있는 모든 도덕적 감각은 하나님께 헌신된 상태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헌신된 영은 옳고 그름에 대한 하나님의 표준을 선택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기를 열망하고,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열망합니다. 헌신된 영은 신뢰하는 힘도 하나님께 드려진 상태입니다. 헌신된 영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결단한 상태이며, 낙심된 일이 있고 유혹이 있는 것과 전혀 상관없이 의지적 행동을 선택하고, 여러 가지 감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로 선택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을 선택한 영은 그 영에게 주어진 '하나님 자신에 대한 바로 그 믿음'에 의해 계속 그 믿음의 헌신이 유지될 것입니다. 헌신된 영은 사랑하는 힘도 하나님께 드려진 상태입니다. 헌신된 영은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자 하며, 하나님께서 사랑하기를 원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빛과 그분의 의지 아래에서 모든 사랑들을 존중하고자 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그 자신이 모든 관계를 재정립해 나갑니다. 그리고 헌신된 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되어 있습니다. 헌신된 영은 하나님의 영광을 받아들이고 인간의 박수갈채를 기대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삶의 진정한 이상과 목적으로 여기지 않고, 그 자신을 하나님의 제단에 있는 살아있는 제물로 놓기를 즐거워합니다. 더 나아가서, 헌신된 영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으로 헌신되어 있습니다. 헌신된 영은 하나님을 자신의 일부분이요, 자신의 행복이요, 자신의 모든 것으로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만 자신 자신의 모든 만족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다른 모든 행복을 통로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인지 혹은 하나님의 채워주시는 능력에 의해 하나님 자신과 함께 모든 생명샘을 소유하게 되는 것인지에 개의치 않고 헌신된 영은 무조건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느낍니다. 그와 같이 헌신된 영은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려진 상태로, 그분을 알려 하고, 그분의 의지를 선택하려 하고, 그분의 성품을 닮으려 하고, 그분의 최고로 사랑하려 하고, 그분만을 영화롭게 하려 하고, 그분 안에서 온전히 즐거워하려 하고, 그분에게 완전하고도 철저히, 그리고 영원히 속하려 합니다. 헌신된 영은 모든 감각, 느낌, 그리고 모든 능력도 하나님에게 헌신되어 있습니다. 헌신된 영은 하나님에 의해 다듬어지도록 그분에게 온전히 맡겨졌고, 하나님께서는 그 영이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헌신된 영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만 듣고자 하고, 그분께서 보게 하시는 것만 보고자 하고, 그분께서 하게 하시는 것만 접촉하고자 하고, 그분 안에서만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만 모든 힘과 능력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헌신된 영은 계속해서 자신을 하나님의 소유물로 여기고, 하나님의 처리에 순응하며, 그 하나님의 처리를 존중하면서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헌신된 영은 사역, 진리, 목적, 교회 등에 헌신된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헌신된 것입니다. 이러한 헌신은 두려움이나 지체함이 없이 기쁘고 자발적으로 행해진 것이며, 위대하고 선하신 주님에게 속하는 것을 최대의 특권이며 명예로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헌신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결하게 하고 우리는 고귀하게 만드시는 놀라운 사역을 수행하십니다. 이러한 우리 영의 헌신은 성결하게 되는 그 순간에 그리고 우리가 행하는 헌신에 뒤따르는 단순한 의식적인 경험이나 느낌을 가지기 전에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빈 그릇으로서, 지금까지 우리 안에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빈 가능성의 잔으로서, 그러나 주님께서 원하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철저한 의지를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에게 우리 자신을 맡기는 것이 바로 영의 헌신입니다. 이러한 영의 헌신은 '단번에 철저히(once for all)' 이루어져야 하며, 그리고 나서 완성된 것으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영의 헌신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면서, 보다 많은 진리의 빛을 자세히 받아가며 지속적으로 새롭게 되고자 하는 '헌신 이후의 모든 행동'을 포함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헌신이 의미하는 모든 의미의 천 분의 일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또한 하늘의 영광 가운데 백만 년을 살고 난 후에 우리가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이 확실하게, '우리가 온전히 그리고 영원히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철저히 알게 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이와 같은 '영의 헌신'이라는 폭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한 번의 행동 후에, 새로운 빛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우리가 하나님의 발아래 거할 수 있는 새로운 힘과 가능성을 인식하게 될 때, 우리가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기쁘게 수용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처음에 경험했던 '모든 것을 포괄하는 성화(all-inclusive consecration)'의 역사가 단지 자세히 드러나는 것일 뿐입니다.(이 부분은 평신도들이 보기에는 어려운 내용인 것 같지만 자세히 글귀를 살펴보면 아주 귀한 내용이기에 그대로 게시합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영을 하나님께 드렸습니까? 이후로 계속해서 여러분 자신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주장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의 차원 높은 속성의 새로운 영역이 여러분들의 의식세계에 열려질 때, 여러분들은 그 영역의 열쇠를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에 기쁘게 놓을 수 있으며, 하나님을 그 영역의 주인이요 가장 귀하신 손님으로 인식할 수 있겠습니까?

 

심슨 목사님은 19세기 중반 무디와 함께 미국 복음주의 운동을 일으키신 분으로서 성결교회와 순복음 교회 및 20세기 복음주의 선교단체 운동의 정신적 뿌리입니다. 한국 교계에서는 찬송가 133장(어저께나 오늘이나), 408장(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찬송가 456장(주와 같이 길 가는 것), 498장(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등의 찬송가 저작자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심슨 목사님의 주옥같은 글을 대해보세요. 심슨의 성결론(7) 영의 성결의 의미(3) 충만한 영셋째, 성결하게 된 영이란 '주님의 임재와 영으로 충만하게 된 영'을 말합니다. 성결의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의 가능성(a possibility)' 뿐이며, 오직 '주님의 임재'만이 그 가능성을 실체로 만들어내십니다. 영이 헌신되었을 때에도, 그 영은 단지 주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빈 그릇일 뿐입니다. 그 그릇을 채우시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위한 공급원으로서 혹은 주님의 간절한 소원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 그릇을 비우시는 분도 주님입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하나님에 대한 성별된 자세, 즉 헌신이라는 행동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온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꾸준히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맡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것이 되고자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우리의 헌신된 의지 속으로 찾아 들어오셔서, 우리의 산 제사가 그분의 거룩한 제단에 열납되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히 맡긴 상태로 제단 위에 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번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단번에 철저히(once for all)' 그분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우리도 또한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 시대의 번제가 의미하는 내용입니다. 구약 시대에 번제를 드리는 사람은 그 자신을 드리지 않았고 다만 흠 없는 양에게 안수를 했습니다. 그러면 그 양이 온전한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제물 되신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우리가 손을 댈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여질 만한 성별된 존재가 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영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와 그분 자신을 연합시키시게 되고 그 순간 우리가 드리는 산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온전한 제사가 됩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 및 하나님과의 교제는 하나님 자신의 은혜가 있어야 효과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을 하나님께 드리면,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그분 자신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그때 그분께서는 우리의 이해력의 눈을 열어주시고,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인격성을 보여주시고, 우리의 영적 인식체계에 그분의 진리를 펼쳐 보이시고, 그분 자신의 빛 안에서 빛을 보게 하십니다. 성령의 단순한 손길을 접하고 짧은 시간에,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 심오하고 성경적인 하나님의 가르침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계획을 충분히 깨달아 아는 것을 가끔 보면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형편없는 삶에서 구원받았지만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한 불쌍한 소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지 며칠 안에 그녀는 단순한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말미암아 성경 및 완벽한 구원의 계획에 대해서 대단한 지식을 소유하는 경지까지 올라섰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우리의 영을 그분에게 단순히 드리면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빛과 계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형상을 닮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도덕 및 의를 추구하는 투쟁으로 그 하나님의 형상을 창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 자신의 영에 의해 그분의 모습으로 새롭게 창조되어야 하며, 그분의 손으로부터 우리 마음에 직접적으로 각인된 그분의 신적인 도장에 의해 그분의 모습으로 찍혀져야 합니다.그렇게 할 때 그분은 우리에게 거룩함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성별된 존재로 만들기 위해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됩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돌아서 거룩한 삶을 살기로 작정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의 흠 없는 의를 가지고 우리의 빈손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령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뢰하기로 작정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믿음을 주시고 굳건한 믿음을 계속 가지게 함으로 그 작정을 선하게 만들어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의 편에서는 단지 목적일 뿐이며, 그 사랑을 능력 있게 만드시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사랑하기로 작정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그 사랑을 흘려 보내시고, 그분 자신의 영과 사랑의 속성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의 맥박을 조금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기로 작정한 심령들에게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완전한 사랑을 불어넣으실 것입니다.우리는 우리의 원수를 사랑할 수 없으나 그들을 사랑하기로 작정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게 작정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거룩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랑할 수 없는 잘 맞지 않는 동료와 접촉하며 지낼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랑의 영을 가지고 행동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의 영을 불어 넣어주십니다. 그러면 아무 어려움 없이 그들은 그런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되고, 고요함과 침착함과 고상한 선을 향한 자신의 거룩한 열망을 가지고 잘 맞지 않는 동료, 심지어는 원수까지 맞아들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능력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 자신을 드러나게 함으로 하나님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서 투영된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성결한 삶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 및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의 도구가 되겠다고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내어 맡긴 영 안에 있는 하나님 자신의 삶입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영적 감각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감각들이 하나님이 다루시는 기관이 될 때 그 감각들은 성결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적 시각이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열리게 되고, 우리의 영적 미각, 촉각, 그리고 후각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으로 활성화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중생한 영에 관한 놀라운 비밀과 '성결하게 된 영(靈)'의 손님이요 동시에 소유주로 계신 '하나님의 영'에 관한 놀라운 비밀을 깨달으셨습니까? 간단한 예화를 통해서 이 고상한 개념에 대해 설명해 볼까요?일반적인 가죽 가방을 몸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해 봅시다. 그 가죽 가방 안에 있는 작은 은 상자는 혼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작은 상자의 뚜껑을 열면 아주 조그마한 금합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것은 영 혹은 가장 차원 높은 속성의 상징으로 여겨질 것이며, 그 조그마한 금합 안에는 한눈에 보기에 값비싼 보석이 놓일 만한 장소가 있을 것입니다.

심슨의 성결론(8) 인간의 부르짖음과 하나님의 공급하심

여러분의 영 안에 있는 금합은 비어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얼굴로 가득 차 있습니까? 아니면 복된 주님에게 드려지고 그분에 의해 소유되었습니까? 그 금합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집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금합을 받으셔서 그것을 그분의 영광스러운 거처로 삼으셨으며, 그것을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그분의 복된 나라의 영광스러운 왕좌로 삼으셨습니까?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에 아직까지 자신의 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영이 죽음에서 되살아나서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좌소(座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여러분들이 생명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모든 사항은 물리적 유기체, 자신들의 정신적 기능, 자신들의 인간적 사랑과 관련된 것들뿐입니다. 여러분들은 인간적으로 예민하고 약삭빠른 삶을 살고, 모든 삶이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활동과 관련되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아쉽게도 여러분들의 영혼은 죽어서 차가운 상태가 되었으며 우리가 이제까지 묵상했던 그런 차원 높은 생각들을 결코 붙잡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아직까지 들어가 보지 못한 한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는 여러분들이 열심히 추구해야 할 바로 그 영원한 세계입니다.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삶은 여러분들을 결코 천국의 삶으로 이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고전 15:50). 여러분들의 육체적 삶은 여름날의 꽃처럼 시들어버릴 것이고, 여러분들의 정신적 재능들이 여러분들을 높은 위치로 이끌 수는 있을지라도, 천상의 기쁨을 맛보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면 그 전에 다른 속성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어떤 음악을 모르는 미국인이 독일에서 열리는 위대한 음악 축제에 참석하려 한다고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큰 음악당에 들어가겠지만 그 안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며 음악에 대해서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노래가사는 의미 없는 소음일 것이며, 노래 가락도 그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일 것입니다. 그는 수학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정치와 철학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영어로 유창하게 의견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자신과 맞지 않는 장소에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음악을 아는 사람들과 교제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열쇠를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이 땅의 위대한 지성인이 천국 사회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에게 있어서 천국 사람들의 노래와 기쁨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여질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가정에 속한 사람들의 대화를 그 사람들의 발 밑에 있는 작은 개와 창밖에 있는 카나리아가 알아들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땅의 지성인은 천국의 사람과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천국의 세계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 지성인은 천국에 사는 존재와 한 곳에서도 접촉할 수 있는 점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천국은 그들에게 있어서 다른 세계, 사막과 같이 알려지지 않은 삭막한 세계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천국의 향기로부터 도망쳐서 자기와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설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영적 존재가 사는 곳인데, 그는 오직 지성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그 지성인과 전혀 공통점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지성인의 영역은 자신들의 영역보다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낮기 때문입니다. 그 지성인이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천국문을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묻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천국문을 지키는 사람에게 전통적인 고전 문화의 산물, 예를 들어 희랍 신화나 이집트의 유적물에 대해서 자랑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천국문을 지키는 천사는 연민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할 것입니다. "당신이 말한 이러한 화려한 유적물은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의 것과 도저히 비교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집트의 가장 거대한 신전도 천국 계단에 있는 하나의 받침대보다 못할 것입니다."아마 그 지성인은 또한 천국문을 지키는 천사에게 천문학, 즉 별 세계의 광대함에 대해서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때 천사를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거리 측정과 같은 일이 필요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보지 않은 천국 세계는 한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꿈꾸었던 천국의 신비보다 수만 배나 더한 천국의 신비를 말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찬란한 영광도 보좌 위에 앉아 계신 그분의 영광과는 비교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영광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으며, 들을 귀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감미로운 구원의 노래도 영원히 들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심령은 하늘의 신호에 반응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하는 휴거의 짜릿한 경험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지성이라는 차원 낮은 세계 속에서만 살고 있기 때문에 천국의 식구가 될 수 없습니다. 이곳은 하나님의 집이며,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영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이 현존하시는 곳에 거주하면서 그분의 무한하고 영원한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허락된 사람들의 집입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이 천국에의 부르심은 복음을 들은 모든 아담의 후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즐거워할 수 있는 새로운 영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영은 성결하게 되고, 깨끗하게 되고, 확장되고,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과 기쁨의 최상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영을 훼손하고 왜소하게 만드는 모든 것으로부터 영을 분리시키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영을 가장 고상한 가능성의 영역으로 높이 들어올리기 위해서 영을 하나님에게 드리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영적인 삶을 추구하고, 영적인 순수성을 유지하고, 영적인 만족을 취하고, 영적인 속성을 잃지 않고, 완전한 영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마음속에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아래의 네 줄밖에 되지 않는 간단한 시는 거룩함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며, 하나님 안에서 그 인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가장 무한한 공급원이라는 사실을 밝혀주면서, 거룩함의 심오함과 높은 경지를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래의 네 줄의 시는 여러분의 빈 마음과 그 빈 마음에 임하는 신적 충만함을 잘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까?인간의 마음 안에는부르짖음이 있고,하나님의 마음 안에는공급하심이 있습니다.

심슨의 성결론(9) 삼분설에서 혼(soul)의 속성과 특징인간의 구성 요소에 관한 신학적 견해로는 이분설과 삼분설이 있습니다. 이분설은 "인간은 영혼과 육신의 2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견해로주로 장로교 계통의 학자와 목회자를 중심으로 그런 견해를 가지고 있고, 삼분설은 "인간은 영과 혼과 육의 3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견해로감리교, 성결교, 오순절 계통의 학자와 목회자를 중심으로 그런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교파와 관계없이 목회자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2분설 및 3분설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가지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즉 장로교 목사님도 3분설을 주장하는 목회자가 많이 있고, 감리교 목사님 중에서도 2분설을 주장하는 목회자가 많이 있는데그러한 다양성은 교파간의 교류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입니다. 심슨 목사님의 인간의 구성 요소에 대한 견해는 3분설인데, 심슨 목사님이 생각하는 혼의 영역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혼의 속성과 특징(The Nature and Attributes of the Soul)우리가 심리학의 깊은 영역으로 내려가, 하나님께서 인간의 가슴 속에 심어두신 놀라운 '의식(consciousness)'의 다양한 특징과 기능을 분석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은 아닙니다. 현재 우리 모든 사람들이 의식하고 있는 것, 즉 정신적 특성 중에서 최소한 다음과 같은 4가지 요소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4가지 요소란 이해, 취향, 애정, 욕구입니다. 1. 이해(Understanding)이해하는 것은 지성의 영역입니다. 인간의 혼에는 다양하고 많은 영역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영역은 대상물에 대해 주의를 집중하여 사물과 사상을 직접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즉 철학자들이 '지각(perception)'이라고 부르는 영역입니다. 그 다음으로 기초적인 영역은 지식을 습득하고, 진리와 관계성을 이해하고, 추리하고, 생각하고, 결론짓는 '지성(intelligence)'의 영역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역에는 과거를 회상하고, 기쁨의 원천 혹은 고통의 원천으로서 마음이 감동 받았던 것과 느꼈던 것을 영원히 저장하는 놀라운 특징인 '기억(memory)'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 영역은 '상상(imagination)'입니다. 이 기능은 혼에게 공간을 무시하는 능력,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옮기는 능력, 주위에 있는 물질적인 형태와 같이 진짜처럼 보이는 상상력의 세계를 창조함으로 빈 공간을 채우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기억(memory)'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기대(expectation)'는 상상력이라는 안경을 가지고 미래를 확대해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이해의 영역 가운데에는 '추리(reason)'와 '판단(judgment)'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격의 핵심 요소이자, 영혼을 불같이 몰아대는 유도체로서, 비교하거나 결론짓고, 교훈을 음미하고, 행동의 진로를 결정하는 기능을 합니다. 때때로 이 영역은 '상식(common sense)'이라고도 불리며, 어떤 때에는 '판단력(the exercise of the judgment)'이라고도 불립니다. 이상의 모든 혼의 영역들은 우리 각 사람이 의식하고 있는, 그리고 혼의 뚜렷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몇 가지 정신적 요소만 언급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정신적 요소들이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과 얼마나 많은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우리가 생각해 볼 때, 정신적 요소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 다른 사람들의 유익, 우리의 복지 등과 같은 숭고한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성결하게 되어야 한다는 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이상 길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2. 취향(Tastes)우리들 각 사람은 어떤 특별한 재능, 정신적 성향, 그리고 적응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음악가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다른 어떤 사람은 미술에 대한 천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천부적인 건축가요 조각가이고, 다른 어떤 사람은 위대한 발명가, 탐험가, 시인, 소설가 등의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각 사람은 마음에 특별한 편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적응력은 보통 사람의 성향에 따라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취향들은 성결하게 되어야 합니다. 앞에서 열거한 여러 종류의 혼의 기능에서와 마찬가지로, 거룩하지 못한 상상력 혹은 그릇된 판단이 문학가를 음란한 위다(Ouida)와 호색적인 바이런(Byron)으로 만드는 것과 같이, 그릇된 취향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악의 전파자로 만들 수 있습니다. 거룩하지 못한 음악에 대한 사랑은 사단의 가장 교활한 유혹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와 우아함을 좋아하는 것, 화려하게 치장하도록 부추기는 것, 유행을 과도하게 따르는 것, 우상숭배적이고 세속적인 모습을 보이는 난잡한 축제 등도 사단의 교활한 유혹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취향들은 원래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취향과 지혜를 투영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만드셨던, 아름다움을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취향들은 '자기(self)'와 '죄(sin)'의 충실한 도구이자 타락과 오염의 원천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타락으로 인해 균형을 잃어버리고 왜곡되었던 이 모든 하늘의 은사들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기를 우리는 간절히 소원해야 되지 않겠습니까?3. 애정(Affections)혼의 가장 내부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영역에는 '마음의 애정(the affections of the heart)'이 거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머니의 사랑, 신랑의 사랑, 자녀의 사랑, 형제의 사랑, 친구의 사랑과 같은 가정적인 사랑을 말하고, 혈족간의 유대관계, 잘 맞는 사람과의 깊은 교제 및 같은 취향, 의향, 관심, 목표를 가진 사람과의 깊은 교제를 포함하고 있는 말입니다. 우리는 바로 앞장에서 성결하게 된 영이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로 사랑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인간의 심령에 성령께서 주는 사랑, 즉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사랑 및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혼 안에 있는 본능적인 인간의 애정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 본능적인 애정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성결하게 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자기, 죄, 무절제로부터 통제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애정과 관련되어 자랑, 욕심, 분노, 경쟁, 유쾌함, 기쁨, 슬픔 등 여러 가지 열정과 감정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열정과 감정들은 그것들의 정도, 그것들의 동기, 그것들의 한계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노를 품고도 죄를 짓지 않는 것이 가능하고, 허영심이 없이 자랑하는 것이 가능하고, 질투 없이 경쟁하는 것이 가능하고, 탐욕 없이 가장 큰 은사를 사모하는 것이 가능하고(고전 12:31), 세속적인 영이나 세속적인 목적 없이 가장 숭고한 하늘의 보상을 열망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이 모든 애정적 요소들은 그릇된 빛 혹은 바다의 암초와 같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혼을 폐허로 만들 수 있으며, 선천적인 소질이 많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탁월한 모습은 오히려 그들의 파멸을 훨씬 더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4. 욕구(Appetites)혼의 영역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이 '욕구(appetites)'와 '성벽(propensities)'입니다. 그것들은 마음의 육신을 이어주고, 육체적 기관의 보조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혼의 요소들입니다. 이 요소들은 나중에 육의 성결과 관련해서 보다 상세하게 언급할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육체적인 감각들을 자극해서 그 감각을 통해서 행동하게 하는 마음의 특성으로서 그 요소들에 관해 간단히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욕구들은 원래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고, 적절하게 균형 잡히고 성결하게 상태에서는 죄도 아니고 비난할만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초래된 왜곡된 인간 속성은 그 욕구들을 참된 질서와 적절한 자리를 이탈하게 만들었고, 많은 경우에서 그 욕구들의 질을 떨어뜨렸고 그 욕구들을 파괴적인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이성과 애정이 욕구에 의해 조절되는 사람은 짐승으로 수준으로 격하되기 위해서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아니, 그가 떨어져 내리는 그 높이를 생각하면 그는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마침내 많은 인간의 혼을 비참하고 가증한 상태로 만듭니다. 이 사실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짐승적인 특성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욕구'와 '성벽'이 온전히 성결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필수적인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혼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혼의 위대성과 혼의 치명성에 대해서 한 번에 깨닫고 싶으면, 우리는 인간 역사의 기록들을 잠시 생각하기만 하면 됩니다. 진리를 찾아내고 그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애썼던 지성인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그들이 숭고하게 느껴집니까! 하나님의 빛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도 플라톤, 소크라테스, 공자, 세네카와 같은 사람이 이루어놓은 업적은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호머, 버질, 단테, 세익스피어의 천재성과 상상력은 얼마나 장대합니까! 알렉산더와 나폴레옹의 힘은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피디아스, 렌, 라파엘, 미켈란젤로의 재주는 얼마나 뛰어납니까! 데모스테네스, 키케로, 차담의 연설은 얼마나 화려하고 영광스럽습니까!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의 문화와 지혜라는 그 고상한 주제가 얼마나 애처로운 모습을 띄고 있습니까! 그 인간의 문화가 지혜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전망들이 얼마나 비참하고 얼마나 실망스럽게 느껴집니까! 수많은 인간의 문화와 지혜들이 영원한 수렁이 눈앞에 펼쳐지기도 전에 파멸로 빠져드는 것을 보면 얼마나 두렵습니까! 가장 위대한 지성인이라는 사람들이 가장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을 얼마나 자주 목격합니까! 인간의 길에 재능, 성공, 미의 영역을 뒤덮고도 남는 위험성이 얼마나 큽니까! 이런 상황에서, 파괴자로부터 세상의 풍요로운 보물들을 지키기 위해 성결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존재가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로 합니까!

심슨의 성결론(10) 마음을 악으로부터 분리시키십시오앞서 언급한 혼의 모든 특성과 기능은 어떻게 온전히 거룩하게 될 수 있을까요? 앞에서 정신적 특성 중에서 4가지 요소, 즉 이해, 취향, 애정, 욕구의 특성과 기능을 살펴보았는데, 어떻게 그 요소들이 성결하게 될 수 있는지 하나씩 살펴볼까요? 먼저 우리의 '이해'의 근거가 되는 우리의 주의와 지각이 거룩하지 못한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거룩한 삶에 대해서 우리가 어려움을 느끼는 진짜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하지 못한 세계가 우리의 전 존재를 휩쓸고 지나가도록 허락하면서 우리의 주의가 온통 그곳에 몰입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우리의 정신은 파멸과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바로 첫 번째 일은 승강구 뚜껑을 닫고 큰 물결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즉 우리의 눈꺼풀을 닫고 우리의 시야로 침입해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물리쳐야 하며, 우리의 속눈썹을 아래로 깔고 '하나님의 눈동자(the apple of His eye)'가 악을 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여러분들이 거리를 걸어가면서, 혹시 여러분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개의 힘을 의식한 적은 없습니까? 하나의 힘은 조용한 묵상과 친교의 영 안에서 하나님을 주목하게 하는 힘이고, 또 하나의 힘은 거리에 있는 모든 것을 바라보도록 유혹하는 힘입니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상품진열대의 현란한 불빛, 복잡한 거리, 아주 활기가 넘치는 장면, 그리고 수많은 유혹적인 것들이 있는데, 비록 그것들이 영을 훼손시키지는 않을지라도 여러분들의 영의 방향성을 산만하게 만들지 않겠습니까?여러분들은 아침에 조간 신문을 훑어보면서, 불결한 냄새를 피우면서 여러분들의 눈을 끌려고 하는 현란한 칼럼이나 글들 위에 여러분들의 눈이 머물렀을 때, 마음에 걸리는 어떤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까? 그 글들은 저속한 문학작가가 죄악이 넘치는 대도시의 뒷골목과 다락방을 배경으로 해서 쓴 것들인데, 비록 여러분들이 그러한 범죄에 가담하지 않을지라도, 여러분들은 그러한 글들을 읽으면서 온 몸에 불결함이 스며드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까? 그때 여러분들의 생각은 이미 그런 불결한 것들과 접촉한 것이 되고, 결국 여러분들의 생각은 오염되어 버리고 맙니다. 언젠가 나는 로버트 잉거솔(Robert Ingersol)의 주장을 반박하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그의 책을 읽도록 권고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책의 한 페이지를 읽고 난 후, 나는 수많은 저주받을 이야기로 온 몸이 사로잡히는 것을 느끼면서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글을 절대 접촉하지도 말라고 경고하는 것밖에 더 이상 할 일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나쁜 대화는 좋은 태도를 부패시킨다"라고 말해 주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모든 악의 모양을 버리는 것이며, 쓸모 없는 흑암의 작품들과 접촉하지 않고, 그러한 것들을 듣지도 않는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한 번은 아주 열렬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젊은 여자 성도가 나를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녀는 어느 토요일 저녁 사람들의 강요에 의해 잉거솔의 강연을 들으려고 갔었습니다.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의 얼굴은 흑암의 빛으로 이상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무엇인가에 홀렸으며 무엇인지 문제인지를 알지 못하겠다고 말하기 위해서 나를 부른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잉거솔의 현란한 거짓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잘못된 것에 저항할 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음의 성결을 위해 가장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모든 악으로부터 마음을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악을 철저히 무시하시고, 그것과의 접촉을 철저히 거부하십시오.

 

심슨의 성결론(11) 생각을 지키십시오지난번에는 마음의 성결함을 얻기 위해 깨끗하지 못한 것과의 접촉을 거부하라는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깨끗하지 못한 사물뿐만 아니라 깨끗하지 못한 생각으로부터도 우리 자신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외부적인 세계로부터의 어떤 접촉이나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관찰이 없어도 혼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수만 개의 내부적 활동으로부터 생기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이 생각 중에서 많은 것들이 악한 생각들입니다. 그리고 필요 없는 생각들은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들을 억눌러야 합니다. 마음의 고삐를 잡고 잘못된 생각들이 마음속에 자리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잘못된 생각들은 마치 배의 갑판을 후려치는 파도와 같습니다. 그러나 파도가 갑판을 후려치는 것과 파도가 승강구 안으로까지 흘러들어오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파도가 아무리 쳐도 우리는 승강구 뚜껑을 닫고 열지 않으면 물이 흘러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마음속에 잘못된 생각들이 틈타지 않도록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들을 받으시고, 그 생각들을 붙잡아 주시고, 우리의 마음에 그분의 차원 높고 거룩한 생각을 채워 주십니다.수많은 사람들이 쓸모없는 생각으로 그들의 마음을 채우고 있습니다. 뇌가 지나치게 소모되고 머리에 엄청난 고통이 생기는 이유는 하나님을 위해서 지나치게 일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유익이 없고 우리에게는 큰 해를 미치는 수많은 관심과 의문들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결하게 된 혼(a sanctified soul)’은 잠잠해야 할 때는 잠잠할 줄 알고, 그 자신의 모든 활동을 멈추어야 할 때는 멈출 줄 아는 ‘혼(soul)’입니다. 이것은 시편 기자가 수많은 활동으로 심신이 지쳤을 때 한 열정적인 부르짖음의 의미입니다.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시 119:113) 그리고 이것은 사도 바울이 언급한 고린도후서 10장 4-5절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씀의 의미입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우리의 상상과 생각들은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의 생각을 기다리며 잠잠하게 있는 법을 배울 때까지 억제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불필요한 소모 상태로부터 구할 수 있고, 영원히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음으로 수많은 유혹의 원천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사단의 방황케 하는 모든 생각들은 한쪽 끝에는 날개를 가지고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악의 씨를 가지고 있는 엉겅퀴 털과 같습니다. 그것은 부드럽게 영혼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지만, 그것이 침투하는 곳마다 기름진 토양에 작은 악의 싹이 나게 하고, 결국 독소 있는 가시가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는 또한 기억이 잘못된 과거에 닻을 내리려 할 때, 그 거룩하지 못한 기억의 활동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상이 공중에 헛된 성을 쌓고 매혹된 혼 앞에서 유혹의 손길을 펼치려 할 때, 그 거룩하지 못한 상상의 활동도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 및 하나님의 의지와 관련이 없는 모든 이러한 활동들을 멈추고 그것들을 신뢰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온전히 인도하고 소유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심슨의 성결론(12) 이해력도 헌신되어야 합니다성결한 삶을 위해서는 이해력도 헌신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지성은 헌신된 상태입니까? 당신의 주의와 관심은 하나님께 드려진 상태입니까? 당신은 “내 심령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오직 주님께 머뭅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신의 생각은 하나님께 드려진 상태입니까? 당신의 지성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알고,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 여길 수 있을 정도로 헌신되었습니까?(빌 3:8) 또한 당신의 기억력은 하나님의 진리를 저장하도록 헌신되었습니까? 당신의 상상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영원한 것을 감각적인 것보다 더 사실적이고 생생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당신의 모든 생각의 능력, 추리의 능력, 판단의 능력, 그리고 결정의 능력은 하나님의 의지만을 알고 행하기로 하나님께 완전히 드려진 상태입니까?하나님은 우리 지성의 창시자이시며, 그분 자신을 위하여 그 지성을 만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지성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그것의 가장 숭고한 역할과 만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숭고하고 거룩한 봉사의 도구이자 기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우리의 영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필요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우리들을 소유하셔야 하고, 우리 안에 그분의 영과 은혜는 물론 그분의 생각과 마음도 넣어주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분 자신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던 그리스도께서는 ‘신적인 속성(a divine nature)’을 가지셨을 뿐만 아니라 ‘추리할 수 있는 혼(a reasonable soul)’도 가지셨습니다. 이것들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인격성과 연합될 때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약하고 허점 많은 뇌로 우리의 복된 주님께서 가지신 이해력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위대한 과학자 케플러처럼 다음과 같이 역설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따라서 하나님의 생각을 생각하고 있습니다.”성령께서는 성결하게 된 지성에 활기를 불어 넣는 힘입니다. 전에는 둔하고 어두웠던 마음이 성령의 손길 아래에서 가장 높은 지성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고, 인간의 천부적 재능을 극도로 발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방탕아 어거스틴(Augustine)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은혜의 능력에 의해 젊은 시절의 방탕한 삶으로부터 벗어나 위대한 선생이 되었고 복음주의 신학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또 한사람의 방탕한 지성인으로는 토마스 찰머스(Thomas Chalmers)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성이 은혜의 힘과 신적 열정에 의해 위로부터 불이 붙는 바로 그 순간부터, 그는 그의 나라와 그의 시대에 종교적 사상과 종교적 삶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훌륭한 삶을 살았던 또 한 사람으로 윌버포스(Wilberforce)가 있습니다. 영국의 귀족 청년으로서, 그는 유행을 따르는 천박한 삶으로 젊은 시절을 허비했고, 그의 마음은 힘도 없고 탁월성도 갖추지 못한 쓸모없는 마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순간부터, 그의 지성 속에 감추어져 있던 모든 능력이 일깨워지고 극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현대 박애주의 운동의 대표적인 선구자가 되었으며,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운동을 일으킨 사람으로서 자신의 나라에서 가장 명예롭고 성공적인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와 비슷한 체험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국의 소매치기단에 속에 있던 해리 무어하우스(Harry Moorhouse), 뉴욕의 부두 절도범이었던 제리 맥컬리(Jerry McAuley), 보스톤의 구두 수선공 견습생이었던 드와이트 무디(Dwight Moody)와 같은 오늘날의 수많은 탁월한 목회자, 복음전도자,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이 그의 마음에 임한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탁월한 정신적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으며 천부적인 재능이 일깨워지게 되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은혜와 활기 넘치는 생명력이 없었다면 그들의 마음은 어두운 상태에서 결코 탈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해와 그 외의 모든 마음의 기능들에 ‘그분의 말씀’과 ‘다른 사람에게 그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으로 채워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주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있어서 신기원을 열어가고 계시는데,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으로 채워주시는 것은 육을 치유하시는 것과 영을 성결하게 하는 것에 비견될 정도로 놀라운 사역입니다. 영에 대한 뚜렷한 성령의 세례가 있는 것처럼 마음에 대한 뚜렷한 성령의 세례도 있습니다. 영의 성령세례는 진실, 믿음, 사랑, 용기, 기름부음, 천상의 불과 같은 특성을 가져다주고, 마음의 성령세례는 건전한 판단, 분명한 표현, 깨끗한 생각, 말의 능력, 매력적인 모습과 같은 특성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특성들은 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서 우리를 주께서 사용할만한 그릇이 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한 그리스도인 여인이 최근에 잠깐 대화를 나누는 중에 이런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녀가 하나님께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능력과 그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할 때 어떤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그녀의 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물체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뼈만 남은 진짜 두개골 같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녀에게 마치 죽음의 암시를 주는 것 같아서 처음에 그녀는 큰 공포에 젖었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서 활활 타오르는 불이 그 뼈만 남은 두개골 안으로 들어가 그 두개골 전체를 채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바로 그때 그녀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려 왔습니다. “이것이 너의 기도의 응답이다. 너의 분주한 뇌는 두개골처럼 죽어 비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성령께서 그것을 그분의 활활 타오르는 불과 활기찬 생명력으로 채워주실 것이다. 그때 성령님께서는 그분의 생각과 느낌을 너의 뇌에 전달하실 것이고, 너의 뇌를 그분의 사역과 그분의 뜻을 행하는 도구이자 기관으로 사용하실 것이다.” 아마 이 여인의 환상이 이제까지 말한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 묘사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자랑스러운 지성과 지혜를 예수님의 발아래 놓고, 자의식과 자족감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여러분들의 머리 속으로 주님의 불세례가 임하도록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의도하시는 새로운 감각을 가지고 여러분들은 다음과 같이 기도하지 않겠습니까?정화시키는 불이여! 내 심령을 관통하셔서나의 혼에 불을 붙여 주시며,구석구석 당신의 생명력을 불어 넣으셔서나의 전 존재를 거룩하게 하소서.

 

심슨의 성결론(13) 취향도 헌신되어야 합니다이제까지 우리는 마음의 기능 중에서 이해, 지성, 사고, 추리의 영역에 관해서만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그 외의 다른 영역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중에서 취향은 우리의 정신적 기능에 방향성을 주고, 선택할 때 지향성을 제공하며, 사역할 때 흥미를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음악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음악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할 필요 없이, 음악은 세속성과 이기심과 죄성으로 잘못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음악은 조심성이 없는 사람을 하나님과 영생 및 구원으로부터 이탈하도록 꾀는 악과 유혹의 핵심적인 보조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음악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온전히 성결하게 된 상태에서 영광스럽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음악은 온갖 세상적인 물결과 죄악된 성향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노래하는 그 목소리는 지나친 세속주의와 감각주의에 빠져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안식일에 성전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는 입술이 거룩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심지어는 난잡한 군중들이 모인 음악당에서나 주중에 벌어지는 맥주 파티에서 드려지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위대한 독일 화가 중의 한 사람이 나폴레옹으로부터 큰 돈과 함께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할 비너스상의 그림을 그려달라고 제의받았을 때, 그는 그의 붓을 사용하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얼마 전에 예수님이 얼굴을 그렸기 때문에 그의 예술이 다시는 결코 신성을 침범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언젠가 나는 나의 거실에서 내가 시무하는 교회 성가대의 지휘자가 유명한 ‘아베 마리아’를 노래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내 영을 압박하는 어떤 개운하지 못한 구름이 있었던 사실을 기억합니다. 나는 무엇이 와서 내 영을 뒤덮었는지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그 가사를 생각하면서 그 가사들이 여호와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할 가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마리아에게 드려진 가사라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도저히 마음에 평화를 발견할 수 없어서 결국 친절하지만 확고한 어조로 그 지휘자 형제에게 나의 느낌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와 같은 불경한 죄악이 느껴지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하나님께 약속드렸습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음악을 지나치게 사랑하여 거룩하지 못한 선율에 귀를 기울여 그들의 귀를 더럽히고 있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음악회에서 혹은 개인의 집 거실에서 흘러나오는 거룩하지 못한 모습들로 그들의 목소리를 더럽히고 있습니까?이러한 취향은 세상과 분리되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고,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취향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가득 채워주실 것이며, 그 취향을 통해서 영광스러운 일을 수행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성가를 부르는 사역만큼 영광스러운 사역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블리스(Bliss), 생키(Sankey), 필립스(Phillips)와 같은 찬양사역자들을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게 된 복음성가의 멜로디에서 흘러나오는 능력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이끌기 위해 그러한 거룩한 취향을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것도 또한 세상적인 것과 분리되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하나님을 나타내지 않는 모습으로 단장되고 장식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방인의 방종한 모습이나 신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예술이라는 취향의 특성은 개인적으로 옷을 입는 문제에서도 세상적인 모습과 분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보다 오히려 세상과 자기를 더 드러내는 치장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술적 취향을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 그 취향들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도구로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방의 벽은 그분을 드러내야 하며, 우리들의 옷장도 주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성스러운 문자들이 쓰여 있는 히브리인들의 옷장과 같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 우리에게 성공을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의 재능과 특성들도 분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영역에서 자기 혹은 이 땅의 영광을 위해서 분투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일을 위해서 그리고 가장 효과적으로 쓰임 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 분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단정한 모습, 좋은 취향, 그리고 탁월한 재능만큼 하나님을 더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문구가 새겨지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의 가장 매력적인 특성과 자신의 마음을 모두 거룩한 제단 위에 올려놓는 많은 재능 있는 남녀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미와 영광, 부요와 영예, 모든 피조물의 찬송과 사랑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기에, 모든 천부적인 재능과 하나님의 무한한 취향과 지혜로 말미암은 은사들은 하나님의 영전에 바쳐지는 영광스런 화환이 되어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발밑에 놓여진 도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