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 공간/성막 자료실

우림과 둠밈

힐링&바이블센터 2008. 10. 23. 11:21
우림과 둠밈(Urim and Thummim)


1 . 우림과 둠밈이란?

* 히브리어로 우림(Urim)은 빛(lights)을, 그리고 둠밈(Thummim)은 완전함(Perfections)을 의미합니다.
* 우림과 둠밈을 어떠한 모양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은 흉패에 넣으라고 지시하지만 만드는 방법이나 모양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출28:30)
* 우림과 둠밈은 자루모양으로 만들어진 흉패에 넣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우림과 둠밈은 항상 흉패와 함께 가슴에 있었습니다.
* 그러므로 흉패에 12보석들이 있듯이 우림과 둠밈도 흉패의 한 부분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2. 우림과 둠밈의 용도

우림과 둠밈은 흉패 안에 넣었습니다. 그래서 흉패와 함께 항상 가슴에 두었습니다.(출28:3) 이러한 우림과 둠밈은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흉패를 성경은 판결흉패라고 불렀습니다. 이 이름은 우림과 둠밈의 기능 또는 용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림과 둠밈이 사용된 성경의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민수기 27:21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좇아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죽음을 앞두고 그에게 어떻게 여호수아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백성을 인도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지시합니다. 그 때 사용하는 것이 우림의 판결법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의도를 판단하는 것이 우림의 역할입니다.

* 사무엘상 28:5-6
"사울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 마음이 크게 떨린 지라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사무엘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영적인 공항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불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곡창지대이며 전략적 요충지인 이즈르엘 평원에서 대대적인 전투를 준비합니다. 이 광경을 바라본 사울왕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찾았습니다. 사무엘 상 28장을 통해볼 때 우림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물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사무엘상 30:7-8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좇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좇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아멜렉 사람들이 남방과 시글락을 치고 성안에 있던 사람들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다윗과 함께 한 사람들은 이 사실을 확인하고는 망연자실 했습니다. 급기야 백성들은 다윗을 돌로 치려했습니다. 이 때 다윗은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고 아멜렉 사람들을 뒤쫓기 위해 에봇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여기에서 에봇을 가져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는 것은 에봇에 있는 판결흉패를 이용했음이 분명합니다.

이상 성경의 예를 통해서 살펴보았듯이 판결흉패는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 제사장은 우림과 둠밈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으로 사용된 우림과 둠밈은 제사장이 모든 판결을 못하도록 하는 방어책이며 하나님의 판단법입니다. 리더는 자의대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이 오늘날 리더에게 허락한 성경을 통해서 밝은 영성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칫 잘못 내리는 리더의 판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교회를 난처하게 만들며 성도들의 인생을 파멸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리더에게 우림과 둠밈은 오늘날에도 필요합니다.

3. 우림과 둠밈의 사용방법

우림과 둠밈을 사용한 예는 위에서 언급한 것 이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림과 둠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성경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어있지 않습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림은 빛(light) 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둠밈은 완전(perfection)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림과 둠밈은 빛과 완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이론을 "성막으로 성경을 말한다"에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해 놓고 있습니다.

(1) 우림이면 둠밈이고 우림이 아니면 둠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판결 흉패를 가지고 물었을 때 우림(빛)이 나오면 둠밈(완전)이고 빛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으로 판결하였다고 전하여 지는 학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만든 영화 "다윗 대왕"에서 보면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갈 때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8명의 아들에게 하나 하나 우림과 둠밈을 대봅니다. 다윗의 형 7명에게 우림과 둠밈을 댔습니다. 빛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댔을 때 빛이 환하게 되었습니다.
리더는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빛이란 옳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말씀에 비추어 빛을 찾아내어 판단을 했을 때 그 판단이 광명을 드러내도록 해야 합니다. 빛과 어둠을 구분하지 못하는 리더라면 진정한 리더가 아닙니다. 빛을 어둠으로 어둠을 빛이라고 판단한다면 그는 사람들을 함정으로 인도할 뿐입니다.

(2) 우림은 흰 돌이고 둠밈은 검은 돌입니다.
하나님께 물어 볼 때에는 언제나 긍정과 부정의 양자택일 대답이 나오게 물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전쟁에 나가야 합니까? 물러서야 합니까?’라고 물으며 판결흉패에서 돌을 한 개만 꺼냅니다. 우림이 나오면 긍정이고 둠밈이 나오면 부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하겠다는 것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내가 판단을 해 놓고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의도를 하나님께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의 의견을 중시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3) 우림과 둠밈은 모두 넓적한 돌로서 긍정과 부정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앞면은 긍정이고 뒷면은 부정입니다. 하나님께 물은 후에 양 손을 넣어 우림과 둠밈을 집어내어 펴 봅니다. 양쪽 모두 긍정이면 긍정입니다. 양쪽 모두 부정이면 부정입니다. 그러나 양쪽이 서로 다르면 보류입니다. 합리적인 판단은 말씀 한 번 보고 기도 한 번 해서 드러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중요한 판단일수록 수없이 말씀에 비추어 보고 하나님께 물어야합니다. 하나님이 긍정이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4) 히브리어 문자는 모두 22자입니다.
히브리어는 22개의 자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흉패의 12보석에 12 지파 이름을 새기는데 모두 72글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흉패의 72글자 가운데 중복되는 글자를 제외하면 오직 18개의 자음만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불완전입니다. 4글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둠밈은 완전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둠밈에 빠진 4글자를 적어 넣음으로 완전한 22자가 됩니다.

우림은 빛을 내는 본체였습니다. 하나님께 판결을 물을 때 둠밈은 꺼내어 놓습니다. 모두 13개의 보석이 됩니다. 우림(빛)은 흉패 안에 그대로 있습니다. 하나님께 물으면 하나님은 글자에 빛을 주셨습니다. 빛나는 글자가 자꾸만 바뀝니다. 대제사장은 글자를 불이 켜지는 순서대로 적어 놓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판결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3.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리더

위에서 우리는 우림과 둠밈의 모양이나 사용방법에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우림과 둠밈의 용도입니다. 우림과 둠밈의 용도를 통해서 이것을 디자인하신 의도하심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림과 둠밈을 흉패에 넣어 가슴에 품도록 디자인 하신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무엇입니까? 크리스천 리더는 입니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판결흉패에 대한 오해의 소지에 대하여 먼저 두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흉패를 우리는 판결흉패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NIV성경에서는 결정을 위한 흉패(breastpiece for making decisions)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판결흉패나 결정하는 흉패로 번역할 때 이것을 디자인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곡해할 수 있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판결" 또는 "결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 무엇을 확정한다는 의미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즉 대제사장이 결정하고 판결하는 "주체"로 이해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둘째, 판결흉패는 점을 친다든가 요행을 바라거나 50%로의 확률 게임으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주사위를 던져서 결정하거나 뽑기를 통해서 결정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림과 둠밈을 주신 것은 대제사장 또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 무엇을 결정하고 결단하도록 어떤 결정권이나 권위를 주기위해서도 아니며 우연이나 요행에 맡기도록 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우림과 둠밈을 주신 목적은
1)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키 위한 방법의 하나였습니다.

우림과 둠밈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만 나타내는 것입니다.

2).대제사장으로 하여금 철저하게 하시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대제사장 개인의 인간적인 의도가 개입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사람의 뜻이 배제됩니다. 우림과 둠밈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지 않으면 대제사장은 아무 결정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림과 둠밈을 디자인 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철저한 신본주의적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철저한 신본주의적 삶이 요구되는 것이 크리스천 리더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일반 리더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은 문제 앞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며 준비된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이 가장 먼저 취할 행동입니다. 그리고 결과를 따라 결단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리더일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 앞에서 크리스천 리더는 먼저 무엇이며 그 분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질문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확인했다면 데이터를 가지고 그 결과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는 리더보다 훨씬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크리스천 리더는 사람입니다.

크리스천 리더는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책임 맡은 사람입니다. 언제나 리더의 미래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리더를 크게 쓰시든지 작게 쓰시든지 그 결정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나 리더가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고 모든 판단과 결정을 하나님의 의도대로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중심을 두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일 것입니다. 바로 그런 리더에게 하나님은 큰일을 맡기시고 위대한 사역을 이루실 것입니다. 리더는 우림과 둠밈의 흉패를 가슴에 품고 가는 하나님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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