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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서두르지 말았음 좋겠습니다.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이것 저것 살펴가며
단장해도 좋을 것을......
어찌 보면 그것 나름의 멋이잖아요.
벽에 황토는 다시 바르세요.
색이 바랬네요.
화장이 서툴러서 그렇지
몸매는 성숙한 처녀입니다.
아직 달빛과 염문은 없네요.
천천히 달래며 내려오세요.
돌들이 제자리를 떠나
아직 서먹한 채로 서있는 곳에
노오란 보자기로 말끔히 덮으세요.
해맑게 웃던 아이 웃음소리는
그대로 잘 담아 가져오세요.
귀뚜리 음악도 준비하고
시원한 바람으로
옷 한 벌 장만했습니다.
고운 얼굴 찬찬히 볼 수 있도록......
급하게 가신 뒤 그 허전함은
찬 세월을 더 힘들게 합니다.
하얀 들꽃 같은 당신
마음 속이지 마세요.
하얀 들꽃 같은 작은 손이
지금
파르르 떨림을 아세요?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지금
흔들리고 있습니다.
제게 다가오세요.
당신이 타고 갈
하얀 배가되어 기다립니다.
미련들은 다 맡기고
이제 노란 낙엽 밟으며
그렇게 오세요.
닻을 올렸습니다.
당신이 가리키는 대로
배를 띄우렵니다.
눈가에 맺힌 하얀이슬이
지금
내 마음에 바다가 되었습니다.
가을에 비가 오는 까닭은
가을에 비가 오는 까닭은
님의 얼굴 잊지말라는 뜻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나를 향해 있을 님의 눈에는
보고픔이 하나 가득 눈물이 되어
이렇게 하늘 구름 따라
내 앞에서 내리기 때문입니다.
님의 목소리 잊지말라는 뜻입니다.
귀에는 들리지 않아도
나를 위해 부르시는 님의 노래는
그리운 맘 하나 가득 빗소리 되어
이렇게 하늘 바람 따라
내 앞에서 들리기 때문입니다.
님의 마음을 잊지말라는 뜻입니다.
손을 잡고 있진 않아도
나를 항상 찾는 님의 손길이
기다리는 마음 가득 사랑이 되어
이렇게 하늘 빗물 따라
내 맘에서 흐르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머물고 있는 길가에서
가을이 머물고 있는 길가에는
이름 모를 하얀 들꽃 속에서
먼길 장사하러 가시며
어린 자식들 떼놓고
가는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질 않아
몇 번이고 뒤돌아 보시던
어머니의 눈물을 봅니다.
장사 보따리 그 위에 얹고
싸리 대문 나서다가는
발걸음 돌려서 부엌으로 가시며
"늦더라도 밥 챙겨 묵거라"
찬장에 반찬 몇 가지
솥 안에 감자밥, 열어보이시던 어머니
먼길 바쁜 걸음으로 가셨을 길은
찬서리가 발등을 시리게 했을 텐데......
가을이 머물고 있는 아침 길가에
하얗게 수건같이 핀 들국화에도
그때 그 서리 녹아 방울 방울
어머니 눈물같이 맺혔습니다.
가을에 오시는 님
귀에 낯설지 않은 소리 있어
뒤돌아 보니
가을바람이 평상에 앉아
좀 쉬어가면서 살라 합니다.
고개를 드니
이슬과 정분 나눈 국화가
달콤한 사랑을 가득 피웠습니다.
내 눈에 눈물이 고임은
파란 하늘이 너무 고와서
눈이 시려 그런가 봅니다.
님이 계신 곳까지 흘러가
강바닥의 돌들이 소리내어
나의 기다림을 말해 주련만
길모퉁이 늙은 코스모스만
그래도 내 마음을 아는양
아직도 안 오신 님을 기다려줍니다.
이 비오면
모 진이 군화신고 성큼 성큼 다가오려나?
이젠 많이도 애처로운데......
수북이 쌓여있는 낙엽에게
무엇이 바쁜지 빗줄기는 고함을 친다.
함께 가을비를 바라보고 싶은
아내의 음성을 들으니
아까부터 몸에 한기가 도는 것 같다.
가을비를 함께 보는
아내의 미소가 더 따뜻하다.
가을, 단풍을 시집보낸다
혼사 날 앞두고 그 놈의 날씨 때문에
제대로 갖춰 보내질 못하는구나.
아직도 검은빛이 도는데......
보내온 혼서(婚書)로 보아선
시 가문(媤家門)은 사가(士家)인 듯 싶다만,
일부종사(一夫從事) 했음을
죽어서도 가져가느니
바알갛게 수줍은 너의 볼이 어여쁘구나.
그동안 정든 곳, 휘 둘러보렴
남겨진 부모 걱정일랑 말고
두고가는 동기(同氣)가 눈에 밟힐 텐데......
다 너 하기 달린 것 아니냐?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
하얗게 눈 오는 날 달래 주려니
제대로 갖춰 보내야 할 텐데......
가을의 러브레터
연분홍 편지지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고운 당신께 편지를 씁니다
까만 분꽃씨를 받아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타는 가슴이지만
연분홍 꽃을 피운 분꽃이랍니다
하늘이 눈이 시리도록 파랗게 되면
당신의 아름다움이 산에도 피어나고
들판에도 피어나서
꿈에만 보았던 얼굴을 서로 마주하고
당신의 손을 잡고
하얀 코스모스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렵니다
고운 당신께 편지를 씁니다
가을이 되면
가을이 되면
훨 훨 그냥 떠나고 싶습니다
누가 기다리지 않더라도
파란 하늘에 저절로 마음이 열리고
울긋 불긋 산 모양이 전혀 낯설지 않는
그런 곳이면 좋습니다
노루 한마리 목 추기고 지나갔을
옹달샘 한 모금 마시고
망개열매 빨갛게 익어가는 숲길에 앉아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래 들으며
반쯤은 졸아도 좋을 것을,
짓궂은 하얀 구름이
그냥 가질 않고
지난날 그리움들을 그리면서
숨어있던 바람불러 향기 만들면
코스모스는 그녀의 미소가 될겁니다
텅 비어있던 가슴 한쪽이 문을 열고
나 혼자의 오랜 그리움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기다림이 되어
그렇게 그렇게
어디론가 훨 훨 떠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