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공간/시가 있는 곳

가을시 모음

힐링&바이블센터 2007. 10. 23. 12:18




바람 부는 날에는 너에게로 가고 싶다



바람 부는 날에는
너에게로 가고 싶다


잔잔히 반짝이는
물결의 비늘을 헤치며
우울한 너의 영혼을 껴 안으러


수면 위에 내려 앉은
흐린 물안개에 젖어도 좋으니
피리 소리처럼 흘러서 흘러서


너의 집 문 밖
늦가을 빛 단풍 나무잎이 지면


거기 함께 흙이 되더라도
너에게 밟히는 그런 흙이 되더라도



-황청원님-







가을에는



가끔 하늘을 올려다 본다
해와 달과 별
그것들 때문이 아니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그리워
올려다 본다


고개가 저리도록 하늘을 올려다 본 날은
내 가슴에도
파란 하늘 한 쪽이 내려와 앉는다


이런 날은
가두어 놓았던 생각들을
모두 불러내어
그들과 얘기라도 하고 싶다


만약
늦게 피는 들꽃이라도 옆에 있다면
그들과 함께
또 하늘을 올려다 볼 것이다.
이렇게 가을에는
가슴이 시리도록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



-노원호님-



 Roger Williams/Autumn Leaves

 

오광수 가을시 9선(選)


 

 
가을에게

이젠 서두르지 말았음 좋겠습니다.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이것 저것 살펴가며
단장해도 좋을 것을......
추녀 끝에 제비집일랑은 그대로 두세요.
어찌 보면 그것 나름의 멋이잖아요.
벽에 황토는 다시 바르세요.
색이 바랬네요.
지붕 위에서 목을 빼며 기다리는 박은
화장이 서툴러서 그렇지
몸매는 성숙한 처녀입니다.
아직 달빛과 염문은 없네요.
여름이 투정 부리고 간 계곡부터
천천히 달래며 내려오세요.
돌들이 제자리를 떠나
아직 서먹한 채로 서있는 곳에
보기 싫은 세월의 찌꺼기들일랑
노오란 보자기로 말끔히 덮으세요.
해맑게 웃던 아이 웃음소리는
그대로 잘 담아 가져오세요.
빨간 고추로 평상을 장식하고
귀뚜리 음악도 준비하고
시원한 바람으로
옷 한 벌 장만했습니다.
이젠 서두르지 말았음 좋겠습니다.
고운 얼굴 찬찬히 볼 수 있도록......
급하게 가신 뒤 그 허전함은
찬 세월을 더 힘들게 합니다.
 
 

 

 

하얀 들꽃 같은 당신

마음 속이지 마세요.
하얀 들꽃 같은 작은 손이
지금
파르르 떨림을 아세요?
억지로 무심한 척 하지마세요.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지금
흔들리고 있습니다.
빨간 계절 같은 마음으로
제게 다가오세요.
당신이 타고 갈
하얀 배가되어 기다립니다.
흘러가는 저 구름에게
미련들은 다 맡기고
이제 노란 낙엽 밟으며
그렇게 오세요.
내 마음은 당신을 향해
닻을 올렸습니다.
당신이 가리키는 대로
배를 띄우렵니다.
마음 속이지 마세요.
눈가에 맺힌 하얀이슬이
지금
내 마음에 바다가 되었습니다.
 

 


 
 

 

 
 

가을에 비가 오는 까닭은

가을에 비가 오는 까닭은
님의 얼굴 잊지말라는 뜻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나를 향해 있을 님의 눈에는
보고픔이 하나 가득 눈물이 되어
이렇게 하늘 구름 따라
내 앞에서 내리기 때문입니다.
가을에 비가 오는 까닭은
님의 목소리 잊지말라는 뜻입니다.
귀에는 들리지 않아도
나를 위해 부르시는 님의 노래는
그리운 맘 하나 가득 빗소리 되어
이렇게 하늘 바람 따라
내 앞에서 들리기 때문입니다.
가을에 비가 오는 까닭은
님의 마음을 잊지말라는 뜻입니다.
손을 잡고 있진 않아도
나를 항상 찾는 님의 손길이
기다리는 마음 가득 사랑이 되어
이렇게 하늘 빗물 따라
내 맘에서 흐르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머물고 있는 길가에서

가을이 머물고 있는 길가에는
이름 모를 하얀 들꽃 속에서
먼길 장사하러 가시며
어린 자식들 떼놓고
가는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질 않아
몇 번이고 뒤돌아 보시던
어머니의 눈물을 봅니다.
흰 수건 머리에 쓰시고
장사 보따리 그 위에 얹고
싸리 대문 나서다가는
발걸음 돌려서 부엌으로 가시며
"늦더라도 밥 챙겨 묵거라"
찬장에 반찬 몇 가지
솥 안에 감자밥, 열어보이시던 어머니
이맘때쯤 산골마을은 서리도 일찍 오고
먼길 바쁜 걸음으로 가셨을 길은
찬서리가 발등을 시리게 했을 텐데......
가을이 머물고 있는 아침 길가에
하얗게  수건같이 핀 들국화에도
그때 그 서리 녹아 방울 방울
어머니 눈물같이 맺혔습니다.
 

 

 

가을에 오시는 님

귀에 낯설지 않은 소리 있어
뒤돌아 보니
가을바람이 평상에 앉아
좀 쉬어가면서 살라 합니다.
솔솔 풍기는 정겨운 내음 있어
고개를 드니
이슬과 정분 나눈 국화가
달콤한 사랑을 가득 피웠습니다.
모두다 정스러운데
내 눈에 눈물이 고임은
파란 하늘이 너무 고와서
눈이 시려 그런가 봅니다.
이 눈물이 강이 된다면
님이 계신 곳까지 흘러가
강바닥의 돌들이 소리내어
나의 기다림을 말해 주련만
이젠 아침이슬도 힘에 부친
길모퉁이 늙은 코스모스만
그래도 내 마음을 아는양
아직도 안 오신 님을 기다려줍니다.
 

 

 

 
가을비를 보며

이 비오면
모 진이 군화신고 성큼 성큼 다가오려나?
창을 두드리는 가을소리가
이젠 많이도 애처로운데......
처음엔 하나 둘 예뻐도 보이더니
수북이 쌓여있는 낙엽에게
무엇이 바쁜지 빗줄기는 고함을 친다.
"보일러 좀 올릴까요?"
커피 한 잔으로
함께 가을비를 바라보고 싶은
아내의 음성을 들으니
아까부터 몸에 한기가 도는 것 같다.
"그래야겠네."
커피 향이 가득한 방안에서
가을비를 함께 보는
아내의 미소가 더 따뜻하다.
 

 

 

가을, 단풍을 시집보낸다

혼사 날 앞두고 그 놈의 날씨 때문에
제대로 갖춰 보내질 못하는구나.
여름볕에 그을은 손등이
아직도 검은빛이 도는데......
보내온 혼서(婚書)로 보아선
시 가문(媤家門)은 사가(士家)인 듯 싶다만,
혼서(婚書)는 잘 간직하여라.
일부종사(一夫從事) 했음을
죽어서도 가져가느니
바알갛게 수줍은 너의 볼이 어여쁘구나.
이젠 신랑 오면 떠나야될 몸
그동안 정든 곳, 휘 둘러보렴
남겨진 부모 걱정일랑 말고
두고가는 동기(同氣)가 눈에 밟힐 텐데......
시집살이 모진 것이야 참아야하고
다 너 하기 달린 것 아니냐?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
하얗게 눈 오는 날 달래 주려니
노란 저고리,  빨간 치마 펼쳐놓고
제대로 갖춰 보내야 할 텐데......
 
 

 


가을의 러브레터

연분홍 편지지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고운 당신께 편지를 씁니다
여름의 꽃밭에서
까만 분꽃씨를 받아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타는 가슴이지만
연분홍 꽃을 피운 분꽃이랍니다
이젠  오세요
하늘이 눈이 시리도록 파랗게 되면
당신의 아름다움이 산에도 피어나고
들판에도 피어나서
멀리 있던 마음은 가까워지고
꿈에만 보았던 얼굴을 서로 마주하고
당신의 손을 잡고
하얀 코스모스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렵니다
지금  연분홍 편지지에 보고픔 담아
고운 당신께 편지를 씁니다
 

 

 

가을이 되면

가을이 되면
훨 훨 그냥 떠나고 싶습니다
누가 기다리지 않더라도
파란 하늘에 저절로  마음이 열리고
울긋 불긋 산 모양이 전혀 낯설지 않는
그런 곳이면 좋습니다
가다가 가다가 목이 마르면
노루 한마리 목 추기고 지나갔을
옹달샘 한 모금 마시고
망개열매 빨갛게 익어가는 숲길에 앉아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래 들으며
반쯤은 졸아도 좋을 것을,
억새 꺾어 입에 물고 하늘을 보면
짓궂은 하얀 구름이
그냥 가질 않고
지난날 그리움들을 그리면서
숨어있던 바람불러  향기 만들면
코스모스는 그녀의 미소가 될겁니다
가을이 되면
텅 비어있던 가슴 한쪽이 문을 열고
나 혼자의 오랜 그리움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기다림이 되어
그렇게 그렇게
어디론가  훨 훨 떠나고 싶습니다
 

 

'정서공간 > 시가 있는 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월의 끝자락  (0) 2007.10.28
시모음  (0) 2007.10.23
꽃은 마음 없이 나비를 부르고  (0) 2007.10.01
가을의 노래  (0) 2007.09.26
저희를 구하소서  (0) 2007.09.26